첩첩산중 험한 오지에서 한마리 담비처럼ㅁㅁㅁㅁ
잼의 고향은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이다.첩첩산중 산꼭대기 기막힌 오지 화전민들의 터전. 지금도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50~60대 남성들의 로망을 그려내는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배경으로 맞춤한 곳.
나는 삼계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왕복 12km 산길을 걸어야 했대. 국민학생이 그 짧은 다리로 걸어가자니 결석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폭우로 다리가 잠기면 못 가고, 눈보라 치면 못 가고 ~
"형 오늘 날씨가 좋으네?" 내가 말하면 앞서가던 형이 슬쩍 뒤돌아 보았다. 그러곤 하늘을 한 번 쳐다봤다. "그래 날씨가 지나치게 좋은 감이 있다 그자?" 나는 형의 입만 바라보았다. 허가가 떨어지길 기다리며...
"뭘 가냐? 그냥 여서 놀자~!" 그래서 저래서 학교 못 가는 날들이 많았지만 그렇게 자체결석 처리하는 날도 꽤 있었다.
겨울이면 먼저 건너 간 장난꾸러기들이 징검다리에 물을 뿌려 얼려놓기도 했다. 얼음 언 징검다리는 고무신 신고는 미끄러워 건널수 없었으니 그 역시 중간하교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무수한 핑계들이 그 멀고 험한 등교길을 피하는 이유가 되곤 했다. 등하교길은 멀기도 했지만 뭔가에 정신이 팔려 바쁘기도 했다. 오가는 길에 징거미새우 잡아먹고 더덕도 캐먹고 개복숭아도 삶아먹어야 했으니까.

가재는 수준이 좀 떨어진다. 진정 귀하고 고급진 음식은 징거미새우다. 개복숭아에는 나름 구슬픈 사연이 있다. 보통 개복숭아가 어디 열리는지는 모두가 알았다. 말하자면 오픈된 먹이감이었던 거다. 요걸 익을 때까지 기다리자면 딴놈들에게 선수를 놓치게 되니 씨도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따먹어야 했다. 여물지 않은 개복숭아는 맛이 쓰고 독해 그냥 먹을 수가 없어서 요리조리 궁리하다가 삶아먹은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그러면 좀 먹을 만했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자연과 별 구분도 되지 않는 몰골로 한 마리 야생동물인 양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다. 아침이면 이슬에 젖어 축축 늘어진 나무가지 아래로 기어다니곤 했다. 가을에는 천지가 노랑, 빨강으로 단풍이 들었다. 새파란 단풍잎도 섞여 있었다. 놀라운 건 색에 흠이 하나도 없었다는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의 생각으론 쥐어짜면 노랑 빨강 파랑 물감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순수' 였다. 그 풍경들은 아직도 내 마음 속 작은 다락방에 남아있고, 나는 그곳에서 가끔 위로를 받는다.
고향을 떠난 건 국민학교 졸업식 직후인 1976년 2월 26일 인것으로 기억한다. 3년 앞서 성남으로 떠난 아버지를 따라 온 식구가 상경을 했다. 그때의 에피소드 하나. 지통마을 그 오지에도 한때 도리짓고땡이 대대적으로 유행이었다. 20장의 동양화로 하는 그 놀이. 아버지도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며 잠시 심취했고, 덕분에 그나마 있던 조그만 밭뙈기마저 날려버렸다.
그것이 아버지가 우리 식구들 남겨놓고 3년 먼저 고향을 떠나 성남으로 가신 배경이었다.
성남과 이재명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언제나 엄마를 먼저 찾았다.멀리 밭에서 김매시던 엄마는 나의 부르는 소리에 호미를 쥔채 일어나 기다렸다. 그다음 내가 한 일은 총알처럼 달려가 엄마 품에 꽂히는 것. 엄마 품은 푸근했고 좋은 냄새가 났다.
"도서실에서 재밌는 책을 빌려왔어."
엄마 앞에서 나는 한없이 텐션이 높고 수다스러운 아이였다.
내가 독하게 일만 잘한다는 평이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건 내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 외부에 드러나는 면모와는 다른 면이 내게도 있다. 사실 나는 살갑고 애교 많고 장난기도 많은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러하다. 그러하다고 주장하고싶다. 또 앞으로 이야기를 통해 증명해 보일 생각이다.
언젠가 재영이 형이 이렇게 말했다. " 어머니와 재명이가 너무 살가워서 나머지 형제들은 우린 같은 자식 아닌가 싶어 섭섭해했죠~!"
손가락 중에서도 유독 사랑을 많이 받으려 드는 손가락이 있다. 사랑받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그런 별난 족속이 있다는데 딱 내가 그런 부류였다. 평생 열심히 하고 배워야 할 것 하나가 '사랑'이라 생각한다. 사랑은 경험이고 노력이며 또 배우는 것. 즉 학습이다. 사랑은 표현한 것만큼 자란다. 나는 환갑 넘은 나이지만 남들이 믿기 어려워할 만큼 아내와 장난치고 수다떨며 잘 논다. 내가 이렇게 살아오고 살수 있는 것도 결국 엄마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은 덕분일 거다.
아버지는 내가 검정고시 공부하고 있으면 전기 아깝다고 불을 끄고 버스비 아깝다고 시험 성적 확인하러 수원 가는 것도 막았다. 그래서 원망스러웠지만 내게 그런 가족사만 있었던건 아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해도 사람의 사랑을 훼방 놓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가난해서 불우한 가족, 가난해서 사랑을 포기하는 청년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이 내 꿈이다. 그래야 마땅하지 않은가? 내가 너무 이상적인가?
* 참고~~~ 요새는 초등학교라고 부르지만 당시엔 국민학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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