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조선 땅 어느 곳.
어떤 여자가 산아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운치있는 마을에 살았다.
어느 늦은 봄날.
하루는 그녀가 동네 뒷산 좀 너른 터가 있는 비탈길 언덕 아래에서 나물을 뜯고 있었는데, 마침 노스님 한분하고 젊은 상좌 중이 그 여자 근처를 지나면서 서로 대화하는 것이었다.
"스님, 저 자리가 전에 말씀하시던 명당, 그 자리입니까?"
"아야~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
"그래도 제가 스님에게서 배운 바대로는 저 자리가 썩 좋아보입니다."
" 어허, 말하지 말라는데도 그러는구나."
" 아 그래도 땅을 보는 제 눈이 생겨서 그냥 있을 수가 없나이다. 저 아낙이 나물뜯고 있는 저 자리가 제가 보기에는 정승판서가 날 자리인데요. 안그런가요?"
"어허~ 말이 많구나. 함부로 천기누설을 하다니~말 조심하거라 인석아."
" 스님,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누가 제 말을 듣습니까? 제발 제 말이 맞는지 말해주십시오. 배운 것을 실전에서 활용을 해야 더 잘 할수 있지 않을까요?"
" 닥치거라 이놈아~~~"
이렇게 스님과 상좌 중이 대화하는 것을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던 그 여자는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벌떡 일어나 뛰어서 지나가는 그들 앞을 막아섰다.
"스님, 방금 하신 말씀을 본의 아니게 듣고 말았습니다. 여기 터가 정말 그런 명당인가요?"
스님과 상좌는 두 눈을 꿈벅이며 시치미를 딱 잡아떼는 것이었다.
" 아닙니다. 그런것이 아니고~ 우리는 암말도 안했습니다."
그러니 이 여자가 한 발 다가서면서
" 아이구 스님네들 방금 제가 두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그리 말씀들 하십니까요? 그라지 말고 제발 자세히 가르쳐 주셔요."
사정이 난처하게 흘러가자 스님이 하는 말,
" 저놈이 지껄이는 것을 내가 꾸짖은 것 밖에 한 말이 없소이다~!"
이렇게 또 잡아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여자가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다시 한 번 재촉을 하였다.
" 그러지 마시고 꼭 좀 가르쳐 주시어요. 사람이 살다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하겠어요? 저는 기어이 그 좋은 명당터를 알고 싶습니다. 네~? 어서요~!!!"
그제야 스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하듯이 말을 뱉었다.
" 저 상좌놈이 허튼 소리를 해대서 큰 비밀이 샜소그려. 저 자리가 과연 명당 자리이기는 하오. 하지만 정승판서가 날 자리는 맞는데
그 자리에 터잡고 살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정승판서가 나서 가문대대로 흥하기도 하고, 또한 대역죄를 지어 멸문지화를 당할 사람이 나기도 할 자리라서, 그래서 함부로 발설을 못하게 한 것이라오."
" 아 그런 극과 극인 곳입니까?"
" 그렇소, 그러니까 그 자리는 함부로 명당이라 권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됩니다."
" 그렇습니까? 말씀 듣고 보니 스님이 말씀을 조심해서 하신 게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 정승판서가 나오게 할 사람의 자격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알려주셔요."
" 네,그렇습니다. 그런 자격이 있지요. 바로 활인적덕을 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 그런가요? 그럼 제가 살아오면서 한 일이 사람을 살리고 덕을 쌓은 일이었는지 들어봐 주셔요"
그러면서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때인가 여자 거지가 애기를 배가지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본디 그 여자는 거지가 아니라 여염집 부인이었다는데 집안이 곤란한데다 남편이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골골하다가 그만 죽어버려서 한 줌 재산까지 탈탈 털어 장사를 치렀다는 것이었다. 가세는 기울어 더욱 더 가난하게 살았던거였다. 집기며 패물도 하나 남김없이 팔아먹고나니 자기 입 하나 먹고 사는데만도 힘든 처지라 뱃속에 애가 들어선 것도 모르고 지내던 차에 아이가 들어선걸 알게되었던 것이었다. 가진것 하나 없고 배는 불러오니 만부득이 가가호호 남의 집 문을 두드려 구걸하여 허기를 채워야 했는데 그 길로 거지가 된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거지부인이었다. 집도 절도 없이 오갈데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된 그 부인이 자기네 동네 어귀에 있는 주막에 들어가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는 것이었다.
" 아이고, 사람 좀 살려 주십시요. 이 뱃속에 아이도 있는데 오갈데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주모 하는 말이 댁의 사정이 딱하기야 하지만 나도 먹고 살아야겠으니 다른 데로 가보시오 하드란다.
" 곧 쓰러질것 같으니 제발 방 하나만 내어주십시요. 힘들어 죽을 것 같어서요."
" 아이구, 그러면 우리 집 손님이 떨어져서 안돼요. 어서 나가서 딴 데 알아봐요."
이러면서 주모가 막무가내로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었다. 배가 남산만한 부인이 주모가 매정하게 거절하는데 하늘을 쳐다보고 눈물을 쏟아내던 차에 한 쪽 토방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남자가 흘끗 보더니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였다.
" 갑시다. 우리 집으로 갑시다."
그 남자가 배부른 거지부인을 힘겹게 부축하여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남자의 부인이 문밖에 마루에 앉았다가 두 사람이 들이닥치자 깜짝놀랐으나 이내 사정을 듣고는 안방으로 들여 이불을 내주고 뜨끈하게 불도 때주었다. 따뜻한 밥을 해먹이고 옷도 갈아 입히고 하였다. 며칠 후 아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무사히 아이를 낳은 것이다. 쇠고기 미역국을 끓여내고, 집 대문에는 금줄을 치고서 산모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다.
이제 그 후가 문제였다. 급한김에 애기를 낳게는 하였으나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는 중에 기왕 좋은 일 하는 것 끝까지 잘해보자 의기투합하였다. 날이 가고 해가가고 삼년을 그리하였다.
스님은 말없이 듣다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혹시 댁네 이야기 아니냐 물으니
" 맞습니다. 저와 우리 남편이 그 일을 했지요"
스님이 말하였다.
" 불쌍한 거지가 몸을 풀때까지 자기 집에서 돌보았으니 두 목숨을 살린 것이니 분명히 활인이요, 삼년 간 보호해주었으니 적덕이 분명합니다. 아주머니와 남편이 그런 훌륭한 일을 해냈으니 마땅히 이 명당터를 쓸 수 있습니다. 자 내가 산수도를 하나 쳐줄테니 안장할 날짜를 잡으시오."
" 알겠습니다 당장에 날을 받지요~!"
" 아닙니다. 명당터에는 그에 걸맞는 인덕과 지력을 갖춘 사람이 택일해야 합니다. 그런 분이 한 분 계신데 남쪽으로 300리 쯤 가면 이진사 그 양반을 만나볼수 있을 게요." 그리고 스님과 상좌는 휘적휘적 걷더니 금세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없었다. 신기한 일이라 생각한 그 여자는 집으로 가서 남편에게 오늘 듣고 본 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산수도를 주면서 어서가서 이진사를 찾아내 묘지 이장할 날짜를 받아오라, 아니 택일 해오라고 여비와 괴나리 봇짐 하나 들려서 등떠밀어 내보냈다.
" 이진사를 아시오?" 길가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불러세우고 이렇게 물은 지 어느덧 1년여, 어느 산골짜기를 지나다가 나무하는 초동을 만나 이진사를 아느냐 물으니 그 초동이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말을 하는 것이었다.
" 저어기 산골짜기에서 팥밭을 파먹고 살지만 인근에서 학자로 소문나있는 이진사가 한 분 있기는 한데 댁이 찾는 그 분인지는 확실치 않아 모르겠습니다. 직접 찾아 뵙고 물어보심이 좋을거구만요."
초동이 가르쳐 준 곳으로 가서 살펴보니 집은 무너질 듯 기울어 있고 사람을 만나보니 거지꼴 남루한 옷을 걸쳐입고 있었다. 다만 한가지 온화한 미소띤 얼굴에 형형한 눈빛은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느껴졌다.
그 날도 온종일 길을 헤매다 겨우 엉덩이 걸칠 집에 들어서서 마루에 앉으니 피로가 몰려왔다. 하루저녁 신세져도 괜찮은지 조심스레 물으니 흔쾌히 승락을 해주어 감사인사를 드렸다.
간단히 요기를 내와 잘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진사의 말은 여느 사람들의 언사와 결이 많이 달랐다. 학식과 인덕이 높아 능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틀림없다, 내가 찾아 헤매던 그 분이 맞다고 확신이 들었다.
" 아이구, 선생님 제가 이진사님을 찾아 거의 1년 여 이 지방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제 절을 받으시고 저의 사연을 들어주십시요."
" 아니, 산골에서 땅이나 파먹고 사는 늙은이가 무엇을 안다고 그런 어려운 부탁을 하고 그런다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요. 사람을 잘못보았소." 하고 딱 잡아떼는 것이었다.
" 아닙니다. 제 정성을 갸륵하게 여기시고, 스님이 그려주신 여기 이 산수화를 보아주시고 택일을 해주시길 간절히 바라나이다."
이진사가 그제서야 산수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 좀 봅시다. 음 명당은 명당이오만 활인적덕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곳입니다. 엉뚱한 사람이 쓰면 삼족이 멸하는 자리입니다. "
그리하여 저간의 사정을 길게 나열하였다. 유심히 듣고있던 이진사는 곧 의관을 정제하고 바르게 앉아서 숨을 고르더니 드디어 안장할 날을 받아주었다.
택일을 받은 남자는 감사 인사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세월이 흘러 그 집안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연히 그 부부의 금슬도 좋고 집안이 흥하고 정승판서가 나고 세세년년 잘 살았다고 전해진다.
내가 남에게 먼저 좋은 일을 해야 나중에 내게 좋은 일이 생기는 법이다.